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의사들, 병원 밖에서는 어떻게 입을까

드라마 속 오프듀티 룩이 눈에 밟히는 이유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수술 장면보다 오히려 캐릭터들이 병원 복도를 벗어나는 순간에 더 눈이 갔다.

가운을 벗으면 사람이 달라진다.

흰 가운 아래 숨어 있던 각자의 취향이, 퇴근 후 첫 번째 씬에서 조용히 드러났다. 스크럽과 레지던트 복 대신 낡은 후드티와 넉넉한 면바지. 손에는 편의점 커피 한 캔. 그게 전부인데도, 그 장면에서 캐릭터가 훨씬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외국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유독 오래 머무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의사라는 직업의 권위를 들어냈을 때 남는 것, 즉 그냥 사람의 모습. 그 모습이 캐주얼 룩 하나로 전달된다. 스타일이 캐릭터 언어가 되는 방식이다.

다섯 캐릭터, 다섯 개의 옷장

이익준: 편안함이 곧 자기 확신

이익준은 오프듀티 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헐렁한 후드 집업, 와이드핏 트라우저, 굽이 낮은 스니커즈. 특별히 세련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촌스럽지도 않다. 딱 자기 자신에게만 맞춰진 옷장이다.

한국어로 이런 스타일을 "꾸안꾸"라고 부른다.

직역하면 "꾸민 듯 안 꾸민 듯"이다. 하지만 이걸 외국 친구에게 설명할 때, 나는 다르게 풀어준다. "노력의 흔적을 지운 스타일", 혹은 "옷이 나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내가 옷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 이익준이 딱 그 상태다. 그의 루즈핏 아이템들은 무심해 보이지만, 사실 그 무심함 자체가 미리 계산된 편안함이다.

안정원: 클래식 캐주얼의 정석

안정원의 오프듀티 룩은 계절마다 교과서처럼 바뀐다. 여름엔 린넨 셔츠, 봄엔 가벼운 코튼 재킷, 겨울엔 울 소재 니트. 화려하지 않은데 어딘가 단정하다. 병원 밖에서도 그는 늘 '제대로 된 사람'처럼 보인다.

이 캐릭터의 스타일을 보고 있으면 두바이 공항 라운지에서 마주쳤던 한 한국인 비즈니스 여행자가 떠오른다. 캐리어에서 꺼낸 옷이 전부 이 비슷한 톤이었다. 베이지, 그레이, 오프화이트. 그 사람이 왜 그 팔레트만 고집하는지 그때는 몰랐는데, 안정원을 보면서 이해가 됐다. 어디서든 튀지 않되 기억에는 남는 전략이다.

양석형: 요란하지 않은 편안함

양석형의 오프듀티 룩은 요란하지 않다. 넉넉한 티셔츠, 편안한 후드, 조거나 면바지. 몸에 딱 붙는 옷보다 여유 있는 실루엣을 택한다. 신발도 튀지 않는 스니커즈 쪽이다.

이 편안함이 그에게 어울리는 건 캐릭터의 성격과 맞닿아 있다. 양석형은 수줍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옷은 자기를 드러내기보다 편하게 감싸는 쪽에 가깝다. 유행을 좇지 않고, 튀지 않는 선에서 자기 리듬대로 입는다. 화려함이 아니라 무던함으로 완성되는 스타일이다.

김준완: 미니멀하게, 그러나 의도적으로

김준완의 옷은 색이 없다. 네이비, 차콜, 블랙, 화이트. 거의 이 네 가지 안에서 움직인다. 크루넥 티셔츠에 슬랙스를 매치하고, 그 위에 얇은 레이어를 하나 더 얹는 방식. 군더더기가 없다.

외국 시청자들은 가끔 이 스타일을 두고 "단조롭다"고 느끼기도 하는데, 한국 패션 언어에서 이건 칭찬이다. "깔끔하다"는 표현이 단순히 정리됐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절제와 취향의 명확함을 담은 말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옮기면 "clean" 정도인데, 뉘앙스가 살짝 다르다. 한국어의 "깔끔하다"에는 사람 자체에 대한 신뢰가 조금 섞여 있다.

채송화: 여성 캐주얼의 결, 아주 조용한 쪽으로

채송화는 여성 캐릭터 중에서도 튀지 않는 방향을 택한다. 와이드 데님, 오버핏 니트, 납작한 로퍼나 흰 운동화. 색 조합은 항상 한 톤이 뮤트(muted)되어 있다. 선명한 색을 쓰지 않는다.

이 스타일이 외국 시청자에게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다. 왜 30대 여성 캐릭터가 이렇게 조용한 옷을 입는가. 하지만 이건 한국 도심 여성 캐주얼의 한 방향이기도 하다. 서울 연남동이나 성수동 골목을 걸으면 채송화 같은 사람을 실제로 자주 볼 수 있다. 소리 없이 존재감을 갖는 스타일. "눈에 띄지 않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 이게 한국어로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자면 "자연스럽다"는 말로 귀결된다.

오프듀티 룩이 말하는 한국식 캐주얼의 문법

"기본템"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캐릭터들의 오프듀티 룩에는 공통된 단어가 있다. 한국 패션에서 자주 쓰이는 "기본템"이다.

직역하면 "기본 아이템"이지만, 이게 단순히 기초적인 옷이라는 뜻은 아니다. 기본템은 어떤 조합에도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 그 자체로 완결되는 아이템이다. 흰 티셔츠 하나, 데님 하나, 단색 니트 하나. 이것들이 쌓이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거의 모든 오프듀티 씬이 만들어진다.

외국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의 스타일을 보고 "쉬워 보인다"고 느끼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실제로 접근하기 쉬운 조합들이다. 하지만 그 쉬움 뒤에는 "과하지 않게"라는 감각이 깔려 있다. 이 감각이 한국 캐주얼 패션의 오랜 문법이다. 넣는 것보다 빼는 것이 더 어렵다.

계절과 레이어링, 서울이라는 맥락

드라마 속에서 캐릭터들은 병원 안에서는 같은 옷을 입지만, 병원 밖에서는 계절을 확실히 입는다. 봄엔 얇은 집업 하나. 여름엔 린넨이나 면. 가을엔 셔츠 위에 가디건. 겨울엔 두꺼운 니트 단독, 혹은 패딩.

이 레이어링 방식이 서울이라는 도시와 맞닿아 있다. 서울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일교차가 크다. 그래서 한국 캐주얼 스타일에서는 레이어링이 장식이 아니라 기능이다. 겉에 뭔가를 더한다는 건 패션의 완성이기 이전에 날씨에 대한 반응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두 시즌에 걸쳐 계절의 변화를 담아냈다는 것도, 캐릭터의 오프듀티 룩이 그 계절을 따라간다는 것도, 세트 디자인과 스타일링 팀의 선택이 꽤 치밀했다는 걸 보여준다.

Sabina's Perspective

처음 이 드라마를 클럽 영업 끝나고 새벽에 혼자 틀었을 때, 나는 스타일 큐레이팅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냥 지쳐서 뭔가 따뜻한 것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채송화가 병원을 나서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화면을 멈췄다. 그 오버핏 니트와 로퍼 조합.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 홍콩이었을 수도 있고, 서울 어느 카페 앞이었을 수도 있다. 특별하지 않아서 오히려 기억에 남는 그 사람들.

좋은 드라마 스타일링은 유행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입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그 작업을 아주 조용하게, 제대로 해냈다.

가운을 벗으면 남는 것. 결국 그 사람의 하루가 거기 담겨 있다.


글: Sabina — 서울 거점, KStoryWorld Cultural Bridge Editor

이미지: Pedestrian crossing in Seoul by AhmedAlElq · CC BY-SA 4.0 · via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