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로이의 올블랙 유니폼: <<이태원 클라쓰>>가 창업자를 하나의 선언으로 만든 방식

처음부터 옷이 말을 걸어왔다

어느 늦은 저녁 호텔 로비, 한 고객이 입고 온 옷을 보면 그 사람이 오늘 어떤 상태인지 대략 짐작이 간다. 단정하게 단추를 잠근 셔츠, 아니면 무언가를 증명하러 온 듯한 올블랙 차림. 옷은 말을 걸기 전에 먼저 도착한다.

<<이태원 클라쓰>>를 처음 봤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눈에 박힌 건 박새로이(박서준)의 얼굴이 아니었다. 검정 터틀넥, 검정 슬랙스, 검정 앞치마. 시즌 내내 변하지 않는 그 조합이었다. 드라마 속 다른 캐릭터들은 에피소드마다 옷을 갈아입고 감정을 색깔로 표현했다. 새로이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게 의상 감독의 결정이든, 캐릭터 설정이든, 아니면 둘 다든 — 결과적으로 그 정지된 팔레트는 드라마 바깥까지 넘어왔다.

한국 드라마에서 패션이 캐릭터를 설명하는 방식은 오래됐다. 하지만 <<이태원 클라쓰>>가 조금 달랐던 건, 새로이의 옷이 "멋있어서"가 아니라 "버티는 자의 옷"으로 읽혔다는 점이다. 그 차이가 이 드라마의 패션을 단순한 스타일링 이야기가 아닌, 2020년대 초반 한국 대중문화가 어떤 인물상을 원했는지에 대한 기록으로 만든다.


검정이 침묵하는 방식

유니폼이 서사를 대신할 때

박새로이가 운영하는 포차 '단밤'의 스태프 유니폼도 올블랙이다. 드라마 안에서 이 선택은 꽤 자연스럽게 처리된다. 외식업 현장에서 검정 유니폼은 실용적이다. 얼룩이 덜 타고,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으며, 공간의 무드를 죽이지 않는다. 오래 운영 현장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이게 심미적 결정이기 이전에 운영 판단이라는 걸 안다.

그런데 새로이의 올블랙은 거기서 한 층을 더 얹는다. 그는 사장이다. 앞치마를 두른 사장. 홀에서 서빙도 하고 카운터도 본다. 한국 외식업 현장에서 오너가 직접 유니폼을 입고 카운터를 지키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 장면을 '겸손'이나 '근검'의 서사로 가져가지 않는다. 새로이의 유니폼 착용은 일종의 선언에 가깝다. 나는 이 자리에 있다, 도망치지 않는다, 이게 내 전선이다 — 그런 뉘앙스.

외국인 시청자들이 이 장면을 볼 때 종종 헷갈리는 지점이 있다. "왜 사장이 직접 서빙을 해? 체면 같은 문제 아닌가?" 사실 한국 외식업 문화에서 오너 셰프, 오너 홀 매니저 개념은 꽤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게 드라마 안에서 패션으로 시각화될 때, 새로이의 앞치마는 '낮아짐'이 아니라 '뿌리내림'처럼 보인다. 검정이 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색이 없다는 것의 의미

색을 고르지 않는 건 선택을 거부하는 게 아니다. 어떤 경우엔 가장 강한 선택이다. 패션 쪽 이야기를 오래 들어온 사람이라면 스티브 잡스의 검정 터틀넥이 종종 소환된다는 걸 안다. 매일 같은 옷을 입음으로써 결정 피로를 줄이고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는다는 논리. 새로이의 올블랙도 그 계보로 읽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 해석이 조금 아깝다고 생각한다. 잡스의 터틀넥은 실리콘밸리라는 무대 위에서 '나는 유행을 초월한다'는 메시지였다. 새로이의 검정은 다른 무게를 진다. 그는 대기업 장가의 횡포에 아버지를 잃고, 억울하게 수감됐다가 나와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인물이다. 그 배경 위에서 올블랙 유니폼은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귀환의 옷에 가깝다. 복수를 말하지 않고 몸으로 표현하는 색.

<<이태원 클라쓰>>가 방영된 2020년 초, 한국 사회는 공정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크게 울리던 시기였다. 세대 사다리가 흔들리고,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감각이 팽배했다. 새로이의 올블랙은 그 감각 안에서 특별한 공명을 만들어냈다. '아무것도 물려받지 않은 자의 유니폼'이라는 독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패션이 아니라 포지셔닝

장가의 수트 vs 단밤의 앞치마

<<이태원 클라쓰>> 안에서 의상 대비가 가장 선명하게 작동하는 순간은, 새로이와 장대희(유재명) 혹은 그의 아들 장근원(안보현)이 같은 화면 안에 있을 때다. 장가 측 인물들은 항상 잘 재단된 수트를 입는다. 네이비, 차콜, 때로는 베이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색과 소재. 주름 하나 없이 관리된 그 옷들은 이 사람들이 어떤 시스템 위에 서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말해준다.

새로이의 올블랙은 그 반대편에 있다. 수트가 없다는 건 그 시스템에 진입하지 않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외식업 현장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싸우는 사람이라는 것. 패션이 계급 언어로 작동하는 방식이 이 드라마에서 꽤 노골적으로 사용된다. 한국 드라마가 전통적으로 재벌-서민 대비를 다룰 때 옷을 도구로 쓰는 건 흔하지만, <<이태원 클라쓰>>는 그 대비를 감정적으로 소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새로이의 복장을 하나의 아이덴티티 브랜딩으로 일관되게 유지했다.

시즌 내내 새로이의 코디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제작 차원의 결정이다. 감정이 요동쳐도, 위기가 와도, 심지어 데이트 장면에서도 그 기조는 유지된다. 이게 실제 사람이라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 캐릭터로서 그것은 그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시각적 선언이 된다.

팬덤이 그 코드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그리고 이후에도 '박새로이 패션'은 국내외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됐다. 검정 터틀넥과 올블랙 코디를 '단밤 룩'이라고 부르며 SNS에서 재현하는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국 패션 편집매장에서 검정 터틀넥 재고가 실제로 빠지는 속도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물론 박서준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그것만으로 설명이 다 되지는 않는다.

오래 같은 일을 하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어떤 스타일이 바이럴이 되는 데는 '입기 좋다'는 조건 이상의 이유가 있다. 박새로이의 올블랙이 그렇게 많이 재현된 건 그 옷이 특정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데 최적화돼 있었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고, 나는 지금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말하고 싶을 때 사람들이 그 코드를 빌렸다.

외국인 시청자, 특히 서구권의 20~30대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반응할 때 새로이의 패션을 따로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한국 드라마 주인공의 패션은 보통 '너무 꾸민' 이미지로 다가오는 경향이 있는데, 새로이의 올블랙은 그 기대를 비켜갔다. 과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고, 그런데 눈에 남는다. 그 조합이 글로벌 접근성을 만들었다.


유니폼이 남긴 것

K-드라마가 전 세계에 퍼지면서 '한국 드라마의 패션'이 독립적인 관심사가 된 지는 꽤 됐다.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 코트, <<도깨비>>의 공유 울코트, <<사랑의 불시착>>의 세련된 레이어링. 각각 그 드라마의 공기를 담은 옷들이 유행을 탔다.

박새로이의 올블랙 유니폼이 그 계보에서 조금 다른 자리를 차지하는 건, 그것이 '갖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하는 옷이 아니라 '되고 싶다'는 상태를 표상하는 옷에 가깝기 때문이다. 판타지가 아니라 태도. 로맨스가 아니라 버팀. 그 지점이 2020년이라는 시간과 맞닿았을 때 패션이 사회적 감각의 옷이 됐다.

기록을 오래 들여다보면 결국 사람이 남는다. 드라마가 끝나고 캐릭터는 사라지지만, 그 인물이 무엇을 입었는지는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어떤 시대가 어떤 몸을 원했는지, 어떤 몸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 그걸 옷이 가장 조용하게, 그래서 가장 오래 기억시킨다.

박새로이가 단밤 카운터 앞에 서 있던 그 올블랙 차림은, 단순히 멋있는 남자의 옷이 아니었다. 시스템 바깥에서 버티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입힌 유니폼이었다. 그리고 그 유니폼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이, 결국 그 시즌 한국이 무엇에 공명하고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글: Jacky — 제주·서울, KStoryWorld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