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과 맥주 그 이상: <<슬기로운 의사생활>> 밴드 멤버들이 선택한 한국 야식 문화
사람이 모이면 결국 뭔가를 먹는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본 외국인 친구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게 있다. "저 사람들 왜 맨날 먹어?" 드라마 속 다섯 명의 의사 밴드 멤버들은 수술실에서 나오면 편의점으로, 회식 자리에서는 삼겹살집으로, 야근 끝에는 치킨 한 마리를 시켜 놓고 둘러앉는다. 그게 드라마 속 장치가 아니라는 걸 한국에서 조금 살다 보면 금방 안다. 밤 열두 시에 배달앱을 켜는 건 한국에서 아주 평범한 일이다.
한국의 야식 문화를 "치킨과 맥주"로만 정리하면 절반도 설명이 안 된다. 치킨은 상징일 뿐이고, 그 뒤에는 훨씬 복잡하고 층이 많은 음식의 풍경이 펼쳐진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그 풍경을 드라마 안으로 끌어들인 방식이 꽤 영리했던 이유도 거기 있다.
치맥이 상징이 된 배경
치킨과 맥주, 줄여서 '치맥'이 한국 야식의 대명사가 된 건 우연이 아니다. 배달 시스템이 정착되고, 치킨 브랜드들이 전국 골목마다 들어선 시기가 맞물리면서 치킨은 가장 빠르고 가장 접근하기 쉬운 야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한강변에서 먹는 치맥이 '낭만'으로 각인됐고, 실제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배달앱을 활용해 한강에서 치맥에 도전하는 모습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여러 번 화제가 됐다.
한강 치맥을 둘러싼 논란
재미있는 건, 이 치맥 문화가 한때 제도적 논란의 중심에 섰다는 점이다. 2021년 한강공원에서 발생한 사고 이후 서울시는 한강공원을 금주 구역으로 지정할 근거를 담은 조례 개정을 추진했다. 그런데 여론이 둘로 갈렸다. 서울시가 실시한 시민의식 조사에서 한강변 금주 구역 지정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60.1%, 한강 치맥 문화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응답이 64.7%로 나왔다. 결국 해당 조례안은 2023년 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심사에서 보류됐다.
숫자를 보면 흥미롭다. 한강에서 맥주 마시는 문화를 지키자는 게 단순한 식욕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한강 치맥을 지키고 싶었던 건 맛 때문만이 아니라, 그 자리가 주는 해방감 때문이었을 거다. 야외에서, 강을 보면서, 옆 사람과 캔 하나 나눠 마시는 그 장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포착한 것
드라마 속 밴드 멤버들의 야식 장면은 치킨만이 아니다.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 병원 구내식당, 삼겹살집 연기 피어오르는 테이블. 이 사람들이 밥을 먹는 방식이 드라마의 감정선을 만든다. 누가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핵심이다. 애초에 이 다섯 명이 따로 또 같이 뭉쳐 연주하고 함께 밥을 먹는 밴드라는 설정 자체가, 음식을 감정의 매개로 쓰겠다는 드라마의 선언에 가깝다.
외국인 시청자들이 이 장면들에 반응하는 이유가 있다. 한국의 야식 문화는 기본적으로 혼자 먹는 게 아니라 함께 먹는 걸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치킨 한 마리는 혼자 다 먹기엔 좀 많다. 삼겹살은 혼자 구워 먹으면 반쪽이다. 이 음식들은 구조적으로 사람을 불러 모은다.
치킨 너머의 야식 목록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화면에 직접 담은 야식은 치킨과 삼겹살, 편의점 음식 정도다. 하지만 드라마가 가리키는 '함께 먹는 밤'의 세계는 그보다 훨씬 넓다. 밴드 멤버들이 화면 밖에서 계속 밤을 보냈다면 마주쳤을 법한, 치킨 너머의 야식 목록을 따라가 보면 한국의 밤 음식 세계가 얼마나 다채로운지 금방 드러난다.
엽떡과 마라의 시대
요즘 한국 젊은층의 야식 메뉴에 빠지지 않는 게 엽기떡볶이(이른바 '엽떡')와 마라 조합이다. 실제로 친구들끼리 밤에 모이면 교촌 치킨과 엽떡을 함께 시키거나, 마라엽떡을 새벽까지 먹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한 모임 기록을 보면 "마라엽떡과 교촌 고바삭, 방어까지" 한 테이블에 올려두고 새벽까지 수다를 떨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조합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한국 야식 문화의 핵심은 '절충'이 아니라 '일단 다 시키고 보는' 것에 가깝다. 드라마 속 밴드 멤버들이 회식 자리에서 메뉴를 가리지 않고 시키던 것과 정확히 같은 심리다.
맥주를 반드시 곁들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요아정(요거트 아이스크림 정기권), 빵, 과자, 떡볶이면을 끓여 먹는 것까지 한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밤에 먹고, 또 먹고, 이야기하다가 지쳐 자고, 아침에 남은 음식을 또 먹는 식이다. 이렇게 사 먹기만 하는 것도 아니어서, 야식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문화도 나란히 자리 잡았다.
삼겹살과 된장찌개, 그리고 목살의 재발견
밴드 멤버들이 회식 때마다 연기 자욱한 테이블에 둘러앉던 그 삼겹살집이야말로, 치킨과 함께 한국 밤 문화의 또 다른 축이다. 치킨이 야식의 대명사라면, 삼겹살집은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저녁을 먹는 장소다. 흥미로운 건 목살에 대한 인식 변화다. 오랫동안 삼겹살의 서브 메뉴처럼 여겨지던 목살이 최근 들어 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목살 첫 입 했을 때 감동 와르르, 목살 맞나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육즙이" 있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삼겹살파와 목살파의 구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인이 고기를 얼마나 진지하게 먹는지를 보여준다.
찌개 취향도 마찬가지다. 삼겹살과 곁들이는 찌개 하나를 두고도 김치찌개파와 된장찌개파가 나뉜다. "된찌 파인데 여기 김치찌개가 진짜 존맛"이라는 표현은 한국인에게 아주 자연스럽지만, 외국인 입장에서는 찌개 종류로 사람이 갈린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것이다.
갈치솥밥과 능이오리백숙: 지역에서 먹는 밤의 맛
드라마 속 다섯 명의 밤은 대체로 서울의 병원 반경 안에서 흘러간다. 그런데 그 바깥으로 나가면 지역마다 결이 다른 밤의 맛이 기다린다. 제주 함덕 쪽 갈치솥밥집은 서울 야식 문화와는 결이 다른 경험이다. "갈치솥밥은 여전히 맛있었다. 반찬도 맛있고 미역국도 맛있고, 특히 고추장아찌랑 와사비 올려먹으면 극락"이라는 표현처럼, 지역 식재료와 솥밥의 조합은 배달앱으로는 재현할 수 없는 종류의 경험이다.
능이오리백숙도 마찬가지다. "국물 너무 시원하고"라는 짧은 한 줄이 그 맛의 전부를 설명한다. 능이버섯 특유의 향이 오리 육수에 녹아드는 방식은, 한국 음식이 '강한 맛'만이 아니라 '깊은 맛'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예다.
왜 이 문화가 외국인에게 낯설고도 익숙한가
한국 야식 문화의 가장 독특한 지점은 '먹는 행위 자체가 감정의 언어'라는 것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밴드 멤버들이 힘든 수술 후에 편의점 바닥에 앉아 삼각김밥을 먹는 장면이 감동적으로 읽히는 이유가 있다. 그 자리가 위로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이 문화를 처음 접하면 '왜 이렇게 많이 먹나'라고 생각하다가, 조금 지나면 '왜 항상 같이 먹나'로 질문이 바뀐다. 한국에서 혼자 먹는 건 물론 일상적인 일이지만, 야식은 특히 누군가와 함께 먹도록 설계된 경우가 많다. 치킨 한 마리, 떡볶이 한 냄비, 삼겹살 한 인분. 이 단위들이 혼자보다는 둘 이상을 전제로 한다.
한강 치맥 논란에서 시민의 60%가 금주에 반대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맥주 자체보다, 그 맥주를 나눠 마시는 자리를 지키고 싶었던 거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해외에서도 통한 이유 중 하나는, 의사들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같이 밥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시즌이 끝난 지 한참 지난 뒤에도 사람들이 이 드라마로 자꾸 되돌아오는 이유 역시, 무엇을 먹었는지보다 누구랑 어느 분위기에서 먹었는지가 오래 기억에 남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야식 문화가 드라마 안에서, 그리고 실제 골목에서, 그렇게 살아있다.
글: Jacky — 제주·서울, KStoryWorld 운영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