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클라쓰 OST, 그들은 어떻게 K-팝의 중심이 되었나

드라마가 끝난 자리에서 음악이 시작됐다

<<이태원 클라쓰>>가 2020년 방영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박새로이의 복수 서사와 박서준의 눈빛에 집중했습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드라마는 그렇게 소비되니까요. 그런데 오래 지켜보면 알게 되는 게 있습니다. 드라마가 끝나고 한참 뒤에도 사람들이 무언가를 찾아 스트리밍 앱을 열 때, 그들이 찾는 건 대사가 아니라 노래라는 것을요.

<<이태원 클라쓰>> OST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드라마 속 장면들이 희미해진 뒤에도 특정 멜로디 하나가 사람들의 귀에 남아 아티스트의 이름을 검색하게 만들었고, 그 검색이 쌓여서 몇몇 이름들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K-팝 씬의 중심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건 화려한 데뷔 무대 이야기가 아닙니다. 드라마의 배경음악이라는 자리에서 시작해, 그 무게를 버티며 결국 스스로의 이름으로 서게 된 아티스트들의 이야기입니다.

김필이라는 이름이 박히는 방식

OST 한 곡이 만들어낸 각인

김필을 처음 의식하게 된 게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그의 전략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그런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그의 목소리는 이미 귀 안에 들어와 있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응답하라 1988>>에서 '청춘'을 불렀을 때 이미 그의 이름은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이태원 클라쓰>>의 '그때 그 아인'은 그 각인을 훨씬 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대표 OST로 자리 잡은 이 곡은, 단순히 드라마를 장식하는 배경음악이 아니라 장면 하나를 통째로 기억 속에 봉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외국인 시청자들 사이에서 이 곡이 화제가 됐던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드라마에서 흘러나오던 그 노래, 누가 부르는 거냐"는 질문이 반복됐고, 그 답이 김필이었습니다. 한국인에게는 이미 알려진 이름이지만, 해외 시청자에게는 <<이태원 클라쓰>>가 처음으로 그 이름을 가르쳐준 통로였던 셈입니다.

한 드라마에 묶이지 않는 이유

김필의 강점은 한 작품에 묶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동백꽃 필 무렵>>의 '겨울이 오면',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나도 모르는 노래', <<스타트업>>의 '어느 날 우리', <<나의 해방일지>>의 'Here We Are', <<지리산>>의 'Destiny'까지, 그는 작품마다 전혀 다른 감정의 결을 소화했습니다.

이건 단순히 작업량이 많다는 뜻이 아닙니다. 각 드라마가 요구하는 감정의 온도가 다 다른데, 그 온도를 매번 정확하게 맞춰낸다는 뜻입니다. 어떤 드라마는 묵직하게 가라앉아야 하고, 어떤 드라마는 따뜻하게 데워줘야 합니다. 그 차이를 목소리 하나로 조율하는 사람이 김필입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한 편의 영화 같은 감정을 전달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고, 공연 현장에서 더 큰 울림으로 돌아온다는 말도 거짓이 아닙니다.

박성일이라는 이름, 무대 뒤에서 모든 걸 설계한 사람

음악감독이라는 자리의 무게

OST 이야기를 할 때 아티스트의 이름이 먼저 불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아티스트가 어떤 무대에서, 어떤 구조 안에서 노래했는지를 설계한 사람의 이름은 잘 불리지 않습니다. 박성일이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태원 클라쓰>>, <<나의 아저씨>>, <<폭싹 속았수다>>를 거쳐 온 이 음악감독은, 국내 최고의 OST 음악감독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그가 참여한 드라마 OST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장면과 음악이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건 당연한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드라마의 촬영 리듬, 배우의 연기 템포, 편집의 흐름까지 고려해서 음악이 설계돼야 장면이 과하지도, 밋밋하지도 않게 완성됩니다. 박성일은 그 타이밍을 찰나의 단위로 조율하는 사람입니다.

미니멀에서 시작해 풍성함으로 확장되는 구조

그의 작법에서 반복적으로 눈에 띄는 패턴이 있습니다. 잔잔한 도입부에서 시작해 드럼과 베이스가 더해지며 사운드가 점점 확장되는 구조입니다. 감정이 조금씩 커지는 과정을 음악의 층위로 표현하는 방식인데, 이게 드라마의 서사 구조와 맞닿아 있을 때 특히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이태원 클라쓰>>가 초반의 분노와 상실에서 출발해 점차 성장과 연대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구조였다는 걸 기억한다면, 음악감독이 왜 그 방향으로 사운드를 설계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드라마의 감정선이 음악 안에서 이미 예고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OST가 아티스트를 만드는 시대

드라마가 사라진 뒤에도 남는 것

불 켜놓은 자리에서 보면, K-팝 씬에서 OST가 갖는 위치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게 보입니다. 예전에는 드라마가 끝나면 OST도 함께 잊혔습니다. 방송 일정과 함께 소비되고, 다음 드라마가 시작되면 자리를 내줬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이 바꿔놓은 소비 방식 덕분에 <<이태원 클라쓰>>를 방영 당시가 아니라 2년 뒤에 처음 본 시청자도 있고, 그 시청자가 OST를 찾아 듣고, 그게 알고리즘을 타고 다른 누군가에게 닿는 일이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OST의 유통 수명이 드라마의 방영 기간을 훨씬 넘어서게 된 것입니다.

그 구조 안에서 김필 같은 아티스트가 성장하는 방식이 특이합니다. 신보를 내거나 대형 무대에 서서 갑자기 이름을 알리는 게 아니라, 드라마마다 하나씩 OST를 쌓아가면서 서서히, 그러나 견고하게 대중의 기억 속에 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해외 팬덤이 OST를 읽는 방식

오래 외국인 고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알게 되는 게 있습니다. 그들이 K-팝을 소비하는 순서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이돌 그룹에서 시작해 드라마로, 혹은 드라마에서 시작해 OST로, OST에서 솔로 아티스트로 넘어가는 경로가 생각보다 훨씬 일반적입니다.

<<이태원 클라쓰>>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배포됐고,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OST는 유튜브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계속 재생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어권 시청자들이 김필을 찾고, 일본 팬들이 박성일의 이름을 검색하고, 동남아시아 팬들이 OST 전곡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벌어졌습니다. 이게 바로 OST가 아티스트를 글로벌 씬으로 밀어 올리는 실제 경로입니다.

조용한 것들이 오래 남는다

한국 드라마 OST의 생리를 들여다보면 하나의 패턴이 보입니다. 화제작의 OST는 방영 당시 차트를 달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오래 살아남는 곡들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곡들은 대부분 가장 조용한 순간에 흘렀던 노래들입니다. 클라이맥스의 폭발적인 장면이 아니라, 어느 새벽 혼자 앉아있는 인물의 뒷모습에 얹혔던 멜로디들.

<<이태원 클라쓰>>의 OST들이 그랬습니다. 박새로이가 혼자 주먹을 쥐던 장면, 조이서가 감정을 억누르던 장면 뒤에 흐르던 음악들이 지금도 재생 목록 어딘가에 살아 있습니다. 그 음악들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 김필 그리고 박성일. 그 이름들이 조용히 K-팝의 어느 중심 자리를 차지하게 된 건, 화려하게 치고 나간 결과가 아니라 오래 그 자리를 지킨 결과입니다.

가장 오래가는 것들은 대부분 처음부터 요란하지 않았다는 것을. OST가 그렇고, 그 OST를 만든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글: Jacky — 제주·서울, KStoryWorld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