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다시 불을 켜고 있는가 — 2026년 이태원 여행 트렌드 현장 리포트

기억과 공간 사이, 이태원이라는 이름

이태원이라는 이름을 꺼낼 때, 외국인들은 대개 두 가지 중 하나를 먼저 떠올린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활기찬 포차 골목이거나, 아니면 2022년 10월의 그 밤이거나.

한국을 오랜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이 두 층위가 지금 이태원이라는 공간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걸 안다. 뭔가를 지우거나 덮으려는 게 아니라, 그 위에 다시 뭔가가 쌓이고 있는 중이다. 도시가 상처를 감당하는 방식은 원래 조용하고 느리다.

2026년 이태원을 걸어보면, 그 쌓임의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태원이 원래 어떤 동네였는가

이태원의 역사적 DNA

이태원이 외국인들에게 특별한 공간이었던 건 단순히 한국 음식 대신 버거나 케밥을 팔아서가 아니었다. 한국 사회가 어디서든 쉽게 내보이지 않는 이질성에 대한 관용이 이 골목 어딘가에 있었다. 미군 부대 인근이라는 역사적 배경, 그리고 그 배경 위에 오랜 시간 쌓인 다국적 식당, 이슬람 사원, 클럽, 빈티지 숍, 성소수자 커뮤니티 — 서울의 다른 동네에서는 어색할 법한 요소들이 이 동네에선 자연스럽게 한 블록 안에 공존했다.

<<이태원 클라쓰>>가 이 동네를 배경으로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드라마 속 청춘들이 기성 질서에 맞서며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는 서사가 이태원이라는 공간의 기운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시청자들이 그 드라마를 보고 "저 골목에 가보고 싶다"고 느낀 건, 음식이나 배우 때문만이 아니라 그 공간이 풍기는 자유로운 에너지 때문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이태원에서 찾던 것

오래 외국인 손님들을 만나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그들이 이태원에 오는 이유는 "한국스럽지 않아서"가 아니라 "한국 안에서 가장 경계가 느슨한 곳"이기 때문이다. 명동에서 쇼핑하고, 경복궁에서 사진 찍은 다음, 저녁엔 이태원 어딘가 좁은 골목의 테이블에 앉아 맥주 한 잔 하면서 진짜 서울 사람들과 섞이는 느낌 — 그게 이태원이 가진 여행자의 언어였다.

2022년 이후 그 언어가 한동안 침묵했다.

이태원의 귀환은 진짜인가

숫자보다 먼저 거리를 읽는다

서울관광재단이 관찰한 흐름은 흥미롭다. 과거 외국인 관광객이 명동, 이태원, 홍대에 집중되었다면, 최근에는 성수, 해방촌, 종로 같은 로컬 동선으로 분산되고 있다. 이태원이 독점하던 "외국인 친화 동네"라는 포지션이 흔들린 사이, 다른 동네들이 그 자리를 빠르게 채워나갔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분산이 이태원을 죽이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태원은 다시 조용히 제 목소리를 찾아가고 있다. 2026년 현재 이태원에서 목격되는 변화는 과거의 화려함을 복사하려는 게 아니라, 다른 결의 에너지로 새로운 층을 쌓는 중이다.

해방촌과 경리단길이 흡수한 것들

이태원 본거리가 위기를 겪는 동안, 그 주변 골목들 — 해방촌과 경리단길 — 은 오히려 단단해졌다. 이 골목들은 이태원의 자유로운 DNA를 물려받으면서도, 보다 독립적이고 소규모적인 방식으로 진화했다. 로컬 바, 독립 서점, 작은 갤러리, 비건 식당, 빈티지 편집숍 — 이태원의 원래 에너지를 더 농축된 형태로 품고 있는 공간들이다.

외국인 여행자들이 소셜 미디어로 정보를 얻고 한국인의 실제 일상 동선을 따라가려 한다는 관찰이 여기서도 맞아 떨어진다. 그들은 이태원 랜드마크를 찾아가기보다, 해방촌 계단 어딘가에 있는 이름 없는 바를 찾아 걸어 올라간다. 구글 맵보다 인스타그램으로 발견한 장소를.

이태원 본거리의 재건

이태원 메인 스트리트 자체도 변하고 있다. 빠졌던 자리에 새로운 카페와 음식점들이 들어서고, 몇몇 빌딩 전체를 하나의 콘셉트로 리뉴얼하는 프로젝트들이 생겼다. 특히 용산 일대가 K팝 레이블 사옥 — 하이브 같은 — 이 위치한 지역으로 주목받으면서, 이태원과 용산을 연결하는 동선이 외국인 팬 투어리즘의 새로운 루트로 부상하고 있다.

BTS 광화문 컴백을 보러 온 싱가포르 팬이 성수동을 가장 인상 깊었다고 했지만, 그가 하이브 사옥 근처를 지나치지 않았을 리 없다. K팝 팬덤 기반 여행자들이 이 일대에 새로운 유동 인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태원이 다시 갖게 된 것들, 아직 없는 것들

돌아온 것

외국인 여행자들이 이태원에서 느꼈던 핵심 — 경계 없음, 혼합, 예상 밖의 만남 — 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계 각지의 요리를 한 블록에서 경험할 수 있는 밀도는 서울 어디에서도 이태원만큼 갖추기 어렵다. 이슬람 거리의 할랄 식당들, 아프리카 식재료 가게, 라틴 바, 일본식 이자카야가 같은 골목에 공존하는 풍경은 여전히 이태원만의 것이다.

주중 저녁, 이 골목들을 걷다 보면 관광객과 주민, 외국인과 한국인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이 온다. 좁은 테이블에 어깨 맞대고 앉아 서로 다른 언어로 주문하는 풍경 — 그게 이태원이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해온 분위기다.

아직 다르게 느껴지는 것

솔직히 말하면, 2026년의 이태원은 아직 완전히 돌아온 느낌은 아니다. 주말 밤의 에너지는 예전만큼 폭발적이지 않고, 일부 가게들이 빠진 자리가 채워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 밤의 기억을 완전히 털어낼 수 있는 동네가 세상에 없듯, 이태원도 그 과정을 통과하는 중이다.

하지만 사람이 다시 모이면, 공간도 결국 따라온다. 이태원은 지금 그 교차점 어딘가에 있다.

이태원을 여행하는 지금의 방법

루트를 다르게 짜라

이태원을 제대로 경험하려면 메인 스트리트만 걷는 건 반쪽짜리다. 이태원역에서 내려 한남동 방향으로 걷거나, 반대로 해방촌 오거리에서 시작해 이슬람 사원 쪽으로 내려오는 루트가 훨씬 입체적이다. 경리단길 골목 중간쯤 계단에 앉아 잠깐 쉬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 — 거기서 이태원의 지금을 읽을 수 있다.

한남동은 별도의 챕터로 다룰 만하다. 갤러리, 편집숍, 고급 레스토랑이 밀집한 한남동은 이태원의 DNA를 물려받으면서 더 조용하고 세련된 방향으로 진화했다. 외국인 여행자들이 "진짜 서울 사람들이 사는 동네를 보고 싶다"고 할 때, 한남동은 그 답에 가장 가깝다.

음식 동선으로 하루를 구성하라

이태원의 진짜 강점은 아직 음식에 있다. 점심은 이슬람 거리 할랄 식당에서 시작해, 오후엔 카페 골목을 탐색하고, 저녁은 경리단길의 작은 식당에서 마무리하는 루트는 하루가 금방이다. 특정 국적 음식을 찾는 외국인이라면 이태원만한 동네가 서울에 없다는 건 여전히 사실이다.

불 켜놓은 자리에서 보면, 이태원의 음식 골목은 2026년에도 서울에서 가장 넓은 국적을 품고 있다.

이태원은 '이태원 클라쓰'의 에너지를 되찾고 있는가

<<이태원 클라쓰>>가 보여준 에너지는 단순한 번화함이 아니었다. 넘어졌다가 다시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공간도 그렇게 움직인다.

2026년 이태원은 그 드라마의 첫 회가 아니라, 시즌 2의 중반부쯤 되는 시점이다. 아직 클라이맥스에 이르지 않았지만, 방향은 분명히 앞을 향하고 있다. 기억과 공간이 공존하는 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태원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복잡하고 사람 냄새 나는 동네로 바뀌고 있는지도 모른다.

외국인 여행자에게 이태원을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지금 이 순간 더더욱 그렇다고 답하겠다. 완성된 곳이 아니라,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걷는 재미가 있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시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도시가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중간에 끼어드는 것이다.


글: Jacky — 제주·서울, KStoryWorld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