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전쟁터가 진짜 여행지가 된 이야기 — 태백 우르크 마을 세트장
폐탄광에 군용 텐트가 들어서던 날
오래 같은 일을 하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있습니다. 어떤 공간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것. 그게 아름다워서일 수도, 슬퍼서일 수도, 혹은 다른 세계처럼 보여서일 수도 있습니다. 강원도 태백 통동에 자리한 태양의후예공원은 세 가지를 동시에 가진 드문 곳입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방영되던 2016년, 이 부지는 한보광업소가 문을 닫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폐탄광이었습니다. 제작진은 그 자리에 가상의 국가 '우르크'의 메디큐브와 군용 막사를 세웠습니다. 그리스 자킨토스섬에서 찍어온 외경 영상과 태백 세트장의 인물 영상을 교차 편집했고, 시청자들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드라마가 끝난 뒤 세트장은 철거됐고, 그걸로 이야기가 끝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팬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아무것도 없는 폐탄광 입구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고, 운영자들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세트장을 다시 복원하기로.
지금 그 자리에는 유시진 대위가 머물던 군용 막사, 메디큐브 병동, 군용 헬기와 지프차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군복과 의사 가운을 직접 입어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입니다. 유시진이 강모연의 신발 끈을 묶어주던 그 장면이 찍힌 바로 그 공간에서, 지금도 매일 수백 명의 방문객이 같은 앵글로 사진을 찍습니다.
폐광이 무대가 되기까지 — 강원 탄전 지대가 지닌 무게
석탄이 사라지고 남긴 것들
태백, 정선, 삼척, 영월. 강원도 탄전 지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이름들입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 일대는 말 그대로 나라 경제를 떠받쳤습니다. '강아지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당시 탄광 지역의 활기를 표현하는 관용어로 쓰였을 정도였습니다. 광부들은 위험한 갱도 속에서 일했고, 그 대가로 다른 지역 노동자보다 훨씬 많은 임금을 받았습니다. 마을 전체가 탄광을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1989년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문을 닫는 탄광이 줄을 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빠져나갔고, 마을은 조용해졌습니다. 갱도는 봉인됐고, 거대한 설비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졌습니다.
그 폐허가 드라마 세트장으로, 다시 관광지로 변신하는 과정은 단순한 리모델링 이야기가 아닙니다. 산업화 시대의 주역이었던 사람들의 흔적이 어떻게 다음 세대의 이야기 공간이 되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삼탄아트마인 — 갱도가 미술관이 된 이유
정선 고한읍에 위치한 삼탄아트마인은 <<태양의 후예>> 촬영지 중에서도 조금 다른 결을 가진 공간입니다. 삼척탄좌로 실제 운영되던 폐광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한 이곳에서는, 드라마 속 우르크 지진 이후 강모연이 납치됐던 어두운 아지트 장면과 메디큐브 지하 갱도 격전 장면이 촬영됐습니다.
폐광 특유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세트 없이도 충분히 무겁습니다. 제작진이 이 공간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어두워서가 아니었을 겁니다. 기계를 수리하던 공간이 레스토랑으로, 광부들의 숨을 유지시키던 중앙압축기실이 원시미술관으로, 목욕물을 덥히던 보일러실이 공연장으로 바뀐 공간. 그 레이어들이 쌓여 있기 때문에 이 공간은 드라마 세트장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품고 있습니다. 배우들의 대기실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드라마 촬영지가 여행 루트가 되는 방식
태백과 정선 사이의 거리
외국에서 한국을 처음 찾는 방문객들, 특히 <<태양의 후예>>를 보고 강원도를 검색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하나의 공통된 오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르크 세트장'이 한 군데에 있다는 것. 실제로는 태백 통동의 태양의후예공원, 정선 고한의 삼탄아트마인, 파주 캠프그리브스, 그리고 그리스 자킨토스섬까지 분산되어 있습니다.
드라마를 볼 때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하나의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편집의 힘입니다. 하지만 여행으로 풀어내면 그 공간들은 완전히 다른 맥락과 다른 풍경을 가지고 있고, 그 각각이 오히려 더 풍부한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태백 세트장에서 출발한다면, 세트장 주변으로 동선을 연결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통동에서 왼쪽으로 가면 하이원 추추파크. 도계역과 통리역 사이의 표고차가 커서 지그재그로 놓인 철로, 이른바 스위치백이 있는 곳입니다. 열차가 앞으로 갔다가 다시 뒤로 올라가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Z자 코스. 이 철로는 탄광 시절 석탄을 실어 나르던 열차가 험한 고도를 오르내리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관광열차로 변신해 통리협곡 위를 지납니다. 같은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미인폭포를 만납니다.
파주 캠프그리브스 — DMZ 2킬로미터 앞의 군부대
드라마 초반, 유시진의 한국 본부로 등장했던 파주 캠프그리브스는 태백과 정선과는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진 공간입니다. DMZ 남방한계선에서 2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반환 미군 기지. 미군 장교 숙소와 생활관의 건축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드라마 속 군부대 장면의 리얼리티는 이 공간에서 왔습니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외국인 방문객도 이 공간에서는 자연스럽게 멈추게 됩니다. 미군이 주둔하던 건물,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경계. 이건 세트가 아니라 실제 역사입니다.
기록을 오래 들여다보면 결국 사람이 남습니다
미국 방문객들이 강원도를 찾을 때 기억에 남기는 장소를 보면, <<태양의 후예>> 촬영지 태백 탄탄파크, <<도깨비>>의 오대산 월정사 숲과 주문진 해변, <<미스터 션샤인>>의 삼척 하이원추추파크 같은 이름들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드라마가 먼저고 여행지가 나중이지만, 막상 가보면 드라마보다 장소 자체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게 강원도 탄전 지대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는 사람들을 이곳으로 데려오는 첫 번째 이유였지만, 막상 도착하면 드라마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들이 공간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갱도를 나서는 광부들의 실루엣이 아른거리는 영상이 테마파크 한쪽 벽에 흘러가고, 폐광 위에 세워진 군용 막사에서 사람들은 군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습니다.
태백 탄탄파크(태양의후예공원) 전망대에서는 영동선 동백산역과 태백 시내, 멀리 매봉산 바람의 언덕 풍력단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포토존 '0km 공항'에서는 종이비행기와 잠자리채를 든 소년의 조형물이 맑은 하늘 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탄광 전성기가 끝나고 드라마 세트가 들어왔다가, 이제는 이런 것들이 남아 있습니다.
한번 와보면 알게 됩니다. 이 공간이 '드라마 촬영지'라는 범주에 가두기에는 훨씬 넓다는 것을.
방문 전에 챙길 것들
태양의후예공원(태백 통동 346-4)은 군복 및 의사 가운 체험 프로그램이 별도로 운영되므로 방문 전 운영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삼탄아트마인(정선군 고한읍 함백산로 1445-44)은 전시 구역이 넓고 실내외를 모두 포함하므로 2시간 이상 여유를 두는 것이 적당합니다. 태백에서 정선까지는 차로 40분 내외, 대중교통으로는 환승이 필요합니다. 두 곳을 하루에 돌기보다 각각 반나절씩 따로 잡는 편이 덜 지칩니다.
정선 레일바이크는 7.2킬로미터 코스로 편도 40 ~ 50분, 복귀 열차는 별도로 운영됩니다. 화암동굴은 금광 역사와 자연동굴을 함께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입구까지 모노레일 옵션이 있습니다. 탄광문화촌은 1960 ~ 80년대 광부 생활을 야외에서 직접 걸으며 체험하는 공간으로, 월요일은 휴관이 많습니다.
기록이 있는 자리에는 반드시 이야기가 남습니다. 가짜 전쟁터로 만들어진 이 공간이 진짜 여행지가 된 것도, 결국 그 이야기들이 사람들을 계속 불러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 Jacky — 제주·서울, KStoryWorld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