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가 걷던 거리는 여의도가 아니었다: 테헤란로에서 한바다 찾기
다들 여의도라고 생각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본 외국인 시청자들이 서울 지도를 펼치면 손가락이 먼저 가는 곳이 여의도다. 고층 유리 빌딩, 정장 차림의 변호사들, 창밖으로 보이는 강. 한국 드라마 속 '잘나가는 회사'의 이미지가 오랫동안 여의도와 붙어 있었으니 자연스러운 착각이다.
그런데 틀렸다. 우영우가 매일 회전문과 씨름하던 한바다 로펌은 여의도에 없다. 강남, 그중에서도 테헤란로에 있다.
한바다의 진짜 주소
센터필드 WEST, 테헤란로 231
한바다 로펌 건물의 외관과 그 유명한 회전문 장면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231, 센터필드 WEST에서 촬영됐다. 1회에서 우영우가 회전문 앞에서 멈춰 서고, 이준호가 왈츠 스텝으로 함께 통과해 주던 바로 그 문이다.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알아본다.
극중 설정도 강남이다. 우영우는 역삼역에서 내려 출근한다. 재미있는 건 디테일의 어긋남인데, 우영우는 역삼역 4번 출구로 나오지만 실제 센터필드 WEST는 정반대인 8번 출구 방향에 있다. 드라마 동선 그대로 따라 걸으면 길을 건너야 한다는 얘기다. 성지순례 온 팬들이 4번 출구 앞에서 잠깐 헤매는 이유다.
왜 강남이었을까
서울의 법조 지리를 알면 이 선택이 그럴듯하게 읽힌다. 법원과 검찰청이 모여 있는 곳은 서초동이다. 대법원도, 서울중앙지방법원도 거기에 있다. 그리고 대형 로펌들은 광화문 일대와 강남 테헤란로 쪽에 나뉘어 자리 잡고 있다. 여의도는 금융의 섬이지, 법조의 중심이었던 적은 없다.
그러니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한바다를 테헤란로에 세운 건 고증에 가깝다. 재판이 있는 날 서초동 법원까지 이동하는 극중 동선도 실제 강남 로펌 변호사들의 일상과 겹친다.
테헤란로를 실제로 걸어본다면
평일 오전이 드라마의 공기다
역삼역 8번 출구에서 나와 센터필드 방향으로 걷는 길은 평일 오전 8시에서 9시 사이가 가장 드라마답다. 커피를 든 직장인들이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고, 빌딩 로비마다 출입 게이트 찍는 소리가 이어진다. 우영우가 김밥 도시락을 들고 걷던 장면의 공기가 그대로 있다.
주말에 가면 완전히 다른 동네가 된다. 오피스 지구 특유의 적막이 내려앉아서, 드라마 속 팽팽한 긴장감 대신 텅 빈 대로만 남는다. 사진 찍기엔 오히려 좋지만, '그 장면 안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원한다면 평일이다.
걸어볼 만한 동선
기본 동선은 단순하다. 역삼역 8번 출구 → 센터필드 WEST 회전문 → 테헤란로를 따라 선릉 방향으로 한 블록 → 이면도로의 카페 골목.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센터필드는 일반 오피스 빌딩이라 로비까지는 들어갈 수 있지만, 게이트 안쪽은 입주사 구역이다. 회전문과 로비, 건물 외관 정도가 사진 포인트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근처 이면도로에는 점심 장사를 하는 식당들이 촘촘히 붙어 있어서, 극중 변호사들처럼 '오늘 뭐 먹지'를 고민하며 걷는 경험 자체가 코스가 된다.
김밥을 챙기고 싶다면 방법은 많다. 테헤란로 일대 편의점과 분식집 어디서든 살 수 있고, 우영우처럼 반듯하게 각 잡힌 김밥을 도시락으로 들고 빌딩 숲을 걷는 것만으로 팬에게는 충분한 재미다.
테헤란로라는 이름이 낯설다면
외국인 방문객들이 이 거리 이름을 듣고 한 번씩 되묻는다. 서울 한복판에 왜 이란의 수도 이름이 붙어 있냐고. 1977년 서울과 테헤란이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서로의 도시에 상대 이름을 딴 길을 하나씩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헤란에는 지금도 '서울로'가 있다.
당시엔 강남 개발 초기의 한적한 길이었는데, 지금은 한국 대기업과 IT 회사, 로펌, 스타트업이 줄지어 선 대로가 됐다. 우영우와 동료들이 오가던 배경이 하필 이 길인 것도, 한국에서 '일'이라는 단어가 가장 밀도 높게 응축된 거리이기 때문일 거다.
걷기를 연장하고 싶다면: 선정릉
테헤란로를 선릉 방향으로 계속 걸으면 의외의 장면이 나온다. 빌딩 숲 한가운데에 조선 왕릉이 있다. 선릉역 인근의 선정릉인데, 성종과 중종이 잠들어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유리 커튼월 빌딩들 사이로 500년 된 능의 소나무 숲이 불쑥 나타나는 대비가 이 동네 산책의 숨은 보상이다.
로펌 드라마의 배경을 걷다가 왕릉의 정적으로 넘어가는 코스. 서울이라는 도시가 시간을 겹쳐 쓰는 방식을 한 시간 안에 체험하는 셈이다. 입장료도 저렴하고, 평일 점심시간엔 근처 직장인들이 산책하러 들어온다.
진짜 성지순례는 서울 밖에 있다
정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촬영지 순례로 유명해진 곳들은 서울이 아니다. 우영우 김밥집은 경기도 수원 행궁동에 있고, 소덕동 에피소드의 그 팽나무는 경남 창원의 동부마을에 실제로 서 있는 500년 된 나무다. 후반부의 바다 장면들은 제주 곳곳에서 찍었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지도는 생각보다 넓다. 서울 테헤란로에서 시작해 수원, 창원, 제주까지. 하루짜리 코스가 아니라 한국을 세로로 관통하는 여행 루트에 가깝다.
테헤란로는 그 루트의 출발점으로 좋다. 우영우가 매일 통과하던 회전문 앞에 서 보고, 역삼역 4번 출구와 8번 출구 사이의 사소한 어긋남을 확인하고, 평일 오전의 빌딩 숲 공기를 마셔보는 것. 드라마가 그린 서울과 실제 서울이 어디서 겹치고 어디서 갈라지는지를 발끝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떠나기 전에 한 마디
여의도에 가도 좋은 여행이 된다. 다만 그건 우영우의 동네가 아니라 서울의 금융가를 보는 여행이다. 우영우를 따라 걷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역삼역에서 내리면 된다. 8번 출구다. 4번이 아니라.
글: Jacky — 제주·서울, KStoryWorld 운영자
대표 이미지: Teheran-ro, Seoul — kallerna, Wikimedia Commons, CC BY-SA 4.0